일의 개념이 바뀌고,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일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시대다. 점점 더 많은 일자리가 단기 고용 형태로 변화하고 있고,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은 흔들리고 있다. 한 직장에 들어가서 은퇴까지 평생을 일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미래는 불안한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재테크로 안정적인 수입을 만드는 데 열을 올리고, 퇴근 후에 ‘사이드 잡’을 갖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더 이상 회사가 나를 지켜줄 수 없기에,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난다. 사람들은 퇴근 후에 유튜버가 되거나 에세이 작가가 되거나 가게를 운영하거나 하는 식으로 ‘사이드 잡’을 꾸리면서 ‘자기 브랜드’를 만들려고 애쓴다.

그런데 사실 미술계는 이미 예전부터 그런 식으로 굴러갔다. 미술계 기획 인력은 어느 한 기관에 평생 일하는 경우보다 여러 기관을 거치면서 일자리를 옮겨 가는 것이 일반적이고, 자신이 속한 기관이 자신을 설명해주기보다는 자신의 이름이 자신을 설명해주는 커리어를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미술계에서 4대보험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으며, 대부분 비정규직의 단기 계약 방식으로 고용된다. 심지어 국공립 기관 큐레이터 마저도 계약직이기 때문에 최대 5년을 일하고 난 뒤에는 다른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이제서야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의 일부가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마음 한구석에 불안을 안고 산다. 당장 서너 달 뒤, 1년 뒤를 짐작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국공립 기관에 있어도 계약이 끝나는 2년 후를 늘 염두에 두면서 살아간다. 그러니 10년 후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 자리 다음에 내 자리가 없다는 불안감, 내 일자리가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늘 함께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은 막연히 실체가 없는 걱정이 아니다. 실제로 미술계 내 많은 일자리는 단기로 고용되고 자주 교체된다. 이 때문에 미술 현장에서는 업무 연속성이 끊어지고 노하우가 쌓이지 않으며, 노동자 개인은 현장에서의 교육과 숙련의 기회가 부족하여 업무 능력에서 고숙련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내가 전문가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 다음 스텝을 걱정하면서 느끼는 불안감, 이는 곧 대체불가능한 전문가가 되어야겠다는 압박으로 돌아온다.

'다양한 경험'과 '안정성', 양자택일뿐인가?

그러나 사실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퇴근 후에 제2의 직업을 갖는 이유는 직장이 불안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이기도 한다. 즉 우리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자아실현 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한 회사에 얽매여서 영원히 일하는 것만큼 바라지 않는 것도 없다. 이는 특히 미술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큐레이터들은 한 미술 기관에 속해 평생을 일하기보다 다양한 미술 기관에서 일하는 경험을 원하며, 동시에 독립적으로 자신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를 원한다. 한 기관에서 부품처럼 일하기보다 주도적으로 자신의 성취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니 단지 평생 고용이 보장되는 직장이 답은 아니다.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고,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안정성이 있는 일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도 최소한의 안정성이 필요하다. 자기주도적으로 새로운 일을 다양하게 하고 싶지만 그것이 늘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태이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수입이 끊길 수 있는 불안감에 더해 이들의 일자리에는 제도적 보호장치가 부족하다. 4대 보험, 직장 단체 보험, 조직 내 복리후생, 신용 대출 등 회사가 제공하는 제도적 장치에서 누락된다. 이에 더해 직장이라는 울타리가 제공하는 심리적 안정감에서도 벗어나 있다. 일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기를 원하는 것이 불안정한 상태를 원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양한 경험’과 ‘안정성’이라는 모순된 욕망을 꿈꾼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대기업 정규직’을 기본형으로 짜여져 있다. 한 회사에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일해야만 4대 보험, 신용 대출, 복지 혜택, 세금 정산 등 여러 제도적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고 편리하다. 법과 제도는 혼자 일하는 사람에게 불편하고 불리하고 부당하게 짜여있다. 예컨대 프리랜서는 계약이 끝날 때마다 매번 건강보험공단에 해촉증명서를 제출해야 적절한 건강보험료를 고지 받을 수 있다. 또 한편 프리랜서 엄마는 아이를 공립 보육시설에 맡기기 위해 정규직 엄마보다 훨씬 복잡하고 많은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다양한 형태의 일을 가진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사회에서 제도는 언제나 한발 더디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의 제도적 변화다. 변화하는 고용구조에 적합한 제도들이 만들어져서, 한 직장을 평생 다니지 않더라도 극단적인 불안감에 내던져지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한다. 기본 소득 등 일의 형태에 구애 받지 않는 복지제도를 시행하거나 단기 계약직이 다수를 이루는 특수 분야의 노동조합을 활성화하는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또한 미술계 내적으로 고용구조에 대한 개선의 노력이 필요하고, 단기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망이 마련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미술관 업무의 세분화와 전문화를 통해 한 사람이 온갖 ‘잡일’을 떠맡으며 부딪혀서 일을 배우는 게 아니라, 분야 별로 업무의 축적을 통해 전문성과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우선 이렇게 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변화에 앞서, 당장 이 세계에 놓여있는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불안감을 내려놓고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을까?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늘 대체불가능한 전문성을 가져야겠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전통적으로 전문성은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숙련하여 생기는 그 분야에서의 탁월한 능력”을 의미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흔히 말해지듯이, 한 가지 일을 그만큼 오래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 구조와 시대가 변하면서 점차 새로운 전문성 개념이 대두되었는데, 바로 ‘적응적 전문성’이다. “특정 문제를 표현, 해결하는 데 적절한 패턴을 빠르게 창조할 수 있는 능력”, “작은 단위의 지식과 정보를 유의미하게 연결하는 능력”이 새로운 전문성 개념으로 여겨진다고 한다.[1] 즉 같은 일을 반복하는 능력이 아니라 새롭게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전문적 능력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A 프로젝트에서 얻은 업무 역량을 상황이 유사하면서도 상이한 B 프로젝트에서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단기적으로 여러 프로젝트를 전전하면서도 중요한 것은 내가 중심을 잡고 나만의 전문성을 축적하는 것이다. 한 프로젝트에서 얻은 역량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이를 토대로 다음 프로젝트에서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는 것으로 나만의 업무 연속성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나만의 가치와 강점을 인식하여 나의 일의 이력을 만들어가는 것이 전문성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늘 변화하는 상황과 일을 마주하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일을 해야 되는 경우도 생기고, 미술이 아닌 것 같은 일을 해야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바로 미술 일의 범위를 넓혀 점차 많은 일을 미술 일로 포섭하는 것이다. 미술과 거리가 떨어진 일을 적극적으로 미술로 정의하고, 미술 일 안에 포함시킴으로써 미술 일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미술'이라고 정의된 것의 작은 세계를 벗어나서 더 다양한 영역을 미술이 할 수 있는 일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불가피하게 하는 ‘미술 아닌 일’, 생계를 위한 일을 하면서 미술계와 멀어지는 것을 막는 일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수익을 창출하는 ‘일’로 여겨지지 않았던, 취미에 가까운 일을 적극적으로 ‘일’로 정의하고 경제적 보상을 창출함으로써 일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미술계 안에서 작은 파이를 놓고 경쟁하는 대신에 더 넓은 일거리를 개척하는 것과도 관련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서로 노동의 환경과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급여, 근무 시간 등의 노동 조건뿐만 아니라 일을 하는 방식, 일에서 발생하는 문제 상황, 각 일의 특수성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교류는 문제 상황을 적극적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각자의 노하우를 전달하고 배울 수 있다. 작가든, 기획자든 결국 ‘개인’으로 일하는 미술계에서 이러한 교류와 연대가 결국 우리의 일의 환경을 바꿀 수 있다. ‘일은 그냥 주어진 대로 하는 거지’와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각자의 상황을 이야기 하고, 문제의식을 나누는 것이 결국 궁극적으로 우리의 안정감을 형성할 수 있다.

아직 사회적 인식과 제도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선은 이렇게 스스로 안정성을 만들어가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경험과 안정성 사이에서 불가피하게 하나를 택해서 신나게 불안정하거나 지루하게 안정적인 삶이 아니라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스스로도 나 자신이 참 세상 물정 모르고 헛발질을 하고 있는가 싶다가도, 비슷한 생각을 하며 그것들을 하나하나 실현해 가고 있는 동료들을 보면서 우리가 같이 한다면 무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힘이 난다. 원래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은 여러 모로 고단한 법이다. 몸과 마음을 갉아먹지 않으면서 오래 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