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일

새로운 자리에서 나를 소개할 일도 이제는 드물지만, 그런 자리가 생긴다면, 나는 내 전공과 내가 박사 과정 중이라는 점을 말하곤 한다. 그 때 종종 듣는 말들은 다음과 같다. “어려운 공부를 하고 계시네요.” 어떤 반응을 해야할지 모르는 복잡함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한 템포를 쉬고 내뱉는 “아...!” 아주 간혹 “멋있으시네요.” 인문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의 어떤 점이 ‘멋’인지는 잘 모르겠다. 말한 사람도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기 보다는 나의 삶에 관해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서 그렇게 말했을 확률이 높다. 그 사람 주변에서 인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얻겠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박사 과정을 막 시작한 작년의 내 삶은 ‘멋’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2019년을 시작하면서 나는 여러가지 다짐을 했는데, 그 중 하나는 안정적인 월 수입을 매 달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내가 안정적인 월 수입으로 생각한 것은 한 달 생활비(월세,식비,통신비,교통비) 만큼만의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실직 상태나 병원비 등 급하게 돈이 필요한 상황 혹은 학위 논문을 쓰느라 일을 쉴지도 모르는 일년 정도를 대비한 저축이 가능할 정도로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내가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야금야금 했던 것보다 일을 더 많이 해야 했다.

“어차피 박사 졸업 후에도 이렇게 살아야 하니까...!”

줄어드는 대학 수, 융합 전공으로 통폐합되는 순수 학문, 졸업 후에도 보장되지 않은 교수 임용을 생각한다면, 박사 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다른 일을 여러 개 병행하는 것은 미래의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도록 나를 미리 단련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졸업 후에도 바로 교수가 되지 않을 것이고, 나는 교수직에 있지 않은 기간 동안 나를 경제적으로 서포트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2019년 1학기를 주2일 출근 파트타임 일자리, 대학교 시간 강사 및 수업 조교, 논술 학원 주말 첨삭 아르바이트와 함께 시작하였다.

일하는 대학원생의 한 주

학기 시작과 동시에 내 일주일은 하루 하루가 해야할 일들로 빽빽해졌다. 평일에는 주 2일 모 국어연구소의 집필진으로 일했고, 그 곳에서 사설 모의고사 독서 인문/예술 영역 지문 집필, 문제 출제, 해설 작성 일을 하였다. 추가 업무가 들어와서 문제집에 지문/문제 수정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고3 모의고사 일정에 맞춰서 짜여있는 마감 및 검토 일정을 생각한다면, 주2일 근로하면서 모의고사 지문 작업과 문제집 원고 작업을 함께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야근을 해서 일을 끝마치거나 집으로 가져올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평일의 나머지 3일 동안에 나에게는 ‘대학교의 시간 강사’로서 ‘대학원의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학부 수업의 조교’로서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루는 수도권에 위치한 대학교에 출강을 하였다. 3학점 짜리 전공 수업이었는데, 내가 강의했던 대학교는 광역버스를 타고 1시간 이상 가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오전 10시 3시간짜리 강의를 위해서 나는 7시에 출발해서 8시 반쯤 학교에 도착한 후, 남은 1시간 반 동안 강의 자료를 다시 살펴보거나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보냈다.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고 난 후에도, 곧바로 다음주 강의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도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보람이 있었다..!) 평일의 나머지 이틀 동안은 대학원 수업을 수강하고, 학부 수업 조교 일을 하였다. 수업마다 로드가 다르기는 하지만, 모든 수업에는 기본적으로 읽어가야 하는 텍스트들이 있고, 1-2번의 발제를 해야 했다. 조교를 했던 학부 수업은 2번 있는 글쓰기 과제에 대한 채점/코멘트를 해줘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글에 코멘트를 남기는 것도 많은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과제가 있을 때만 일이 생기고, 어디 나가지 않고 내가 편한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라서 가장 좋았다. 주말 논술 학원 아르바이트는 학원 수강생 사정에 따라 일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다.(그렇게 큰 학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이 없는 날에는 주중에 미처 하지 못한 일(수업 리딩, 강의 준비, 회사의 잔업 등)을 했기에 제대로 쉬는 날이 많지 않았다. 지금도 내가 2019년 1학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작은 시간을 쪼개서 미처 못다한 일들을 처리하면서 살았고, 크고 작은 책임이 뒤따르는 여러 역할들(조교, 학생, 강사, 첨삭 선생님 등)에 나 자신을 욱여 넣었다. 말 그대로 “역할 과부하”였다.[1] 일상의 부당함을 충분히 성찰하고 작은 행복을 음미할 시간도 없이, 기계처럼 눈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하면서 살았다. 인문학을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겠다고 박사 학위 과정에 지원했지만, 나의 삶은 여러 학자들의 논의에서 주장과 근거를 파악하고 이것이 현대에 갖는 의미에 관해서 고민하는 ‘멋’있는 연구자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개인 연구 시간은 어디에 ?

이렇게 일주일 내내 일해서, 나는 대학원생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벌이라고 할 금액을 손에 쥘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살면 절대로 학위 논문을 못쓸 것이 뻔했다. 학위 논문 준비를 위해서 개인적으로 연구할 시간을 도저히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잠을 더 줄이는 수 밖에 없었는데, 저렇게 다른 역할이 빽빽한 시간표 속에서는 잠도 더 줄이기 어렵다. 밤을 꼴딱 샜는데, 그 다음날 강의가 있다면? 혹은 출근을 한다면? 그 날은 강의를 마음에 들지 않게 한 날, 업무 능률이 최악인 날, 혹은 계획한 리딩을 다 하지 못한 날이 될 것이고 그 때 못한 일에 대한 보충은 또 시간을 빼서 해야 하고… 그 시간에 또 못한 일이 생기게 되고… 못한 일이 또 못한 일을 낳는 도미노가 시작된다. 국가인권위가 2015년에 발간한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국공립 및 사립 대학교의 석사 및 박사 과정에 재학중인 학생들이 대학원 재학 중 겪는 어려움으로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은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약 56%의 학생들이 응답)[2] 가족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 있다면, 한 학기에 수 백만원에 이르는 등록금 뿐만 아니라, 생활비까지도 본인이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선택에 책임을 지는 어른답게 이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보자고 호기롭게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삶을 시작했고, 그 결과 개인 연구에 몰두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데 실패하였다.[3] 누군가는 아직 공부하는 학생이니, 일을 하지 말고 공부에 더 집중하면 되지 않냐고, 너무 많은 돈을 벌려고 하지 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비슷한 나이대의 다른 청년들과 비교해봤을 때 내가 특별히 많은 돈을 바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생활비나 등록금을 지원해주지 않는 한, 일을 완전히 그만두기는 어렵다.[4] 결정적으로, ‘아직 공부하는 학생인데’ 로 시작하는 류의 말에는 대학원생을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는 인식이 자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원생도 엄연히 학계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공부/연구를 통해서 학계의 논의에 기여하고 학과 운영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한 학교 행정업무에 종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교내의 이런 저런 일들로 버는 금액의 액수와 관계 없이, 나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학생이 되었다는 것은 공부와 연구를 자신의 주업으로 삼는 사회인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구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이 자기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학교 밖에서 학원 강사나 논술 첨삭, 과외 등을 해야 한다면, 그 학생들은 자신의 개인 연구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고, 그만큼 양질의 연구를 생산할 확률도 낮아지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잠을 더 줄이는 것, 모든 시간을 일과 공부에 쓰는 것이 연구자의 미덕이 되기 쉽다. 하지만 나는 세상을 돌아볼 여유도 허락하지 않고 오직 일과 공부에만 몰두하는 삶이 과연 장기적으로 유지가능한지, 그리고 내가 더 좋은 연구를 생산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남은 질문들과 당장의 해결책

나는 2학기 때 가장 큰 수입원인 국어 연구소 일과 그나마 교내에서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인 조교 일을 제외한 다른 일들을 정리하였다. 버는 돈은 적어졌지만, 적어도 내가 눈앞에 닥친 일들을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기억할 정도의 정신은 생겼고, 삶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지면서 여러 질문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인문계 대학원생이 저축 가능한 안정적 월 수입을 확보하려면 일주일 내내 사교육 시장과 대학에서 여러 역할들에 자신을 갈아 넣으면서 허둥지둥 살 수밖에 없는가?” “그의 연구, 공부가 돈을 받는 노동이 될 수 없는가? 그것이 정말 가능하긴 한가?” “연구, 공부로 돈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문학은 오늘날의 시대에는 부가가치 창출이 불가능한 사양 산업이기 때문일까?”

이런 질문이 모든 대학원생들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이 질문은 내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고,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삶의 태도나 문제의식을 강요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현재 어떤 우선순위를 갖고 어떤 모습의 삶을 살고 있던지 간에 나는 연구를 위한 꿈을 안고 대학원에 들어온 모든 이들의 삶은 더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부 노동자로서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스스로 연구자의 정체성을 갖고 양질의 연구를 생산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 그렇기에 공부노동자로서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원생이 겪는 경제적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은 “대학원생의 연구가 돈을 받는 노동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위 과정에 있는 상황에서는 내가 내 연구를 통해서 나를 경제적으로 서포트할 수 있는 루트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한국 연구 재단의 글로벌 박사 펠로우쉽 사업, 등록금과 생활비 모두를 지원해주는 제도로 경쟁률이 매우 높지만, 2020년 부터 신규 과제 선정을 중단하였다. 지도교수와 함께 내가 연구 보조원으로 일할 수 있는 연구 프로젝트(ex.한국 연구 재단의 중견 연구자 지원 사업)에 지원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공계와 달리 인문계에서 지도교수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서 연구비를 지원받는 대학원생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연구활동으로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생활비까지 커버 가능한 정말로 몇 안되는 교외 장학금에 지원해볼 수 있다. 나는 작년말부터 올해초까지 두개의 장학금에 지원했다. 그러나 둘 중 하나가 되더라도, 지원 기간은 한정되어 있고 결국 지원이 끝날 때쯤 또다른 장학금을 따내지 못하면 앞으로도 학교 밖에서 파트 타임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나를 소진 시키지 않는 선에서 일을 하면서 버티는 것”이 우선은 답인 듯 하다. 지금 당장은 내 연구로 나를 서포트하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그렇게 되기 위하여 나는 내 연구를 갈고 닦을 것이다. 내 공부 시간을 확보하고 야금야금 일을 하고, 적당히 쉬어주면서, “역할 과부하”가 되지 않도록 나를 지킬 것이다. 정신 없었던 지난 1년의 경험을 통해서 배운 바가 있다면, 대학원생도 저술/강연의 밑받침이 될 수 있는 공부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이며, 그에게 가장 우선순위는 자신의 관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연구라는 것이다.


[1] 이 표현은 브리짓 슐트의 『타임 푸어』에서 가져왔다. 이 책은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여성의 노동과 시간에 관해서 다루는 책이라는 점에서 나와는 상황이 조금은 다르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키우는 여성의 노동과 지난 1년간의 나의 노동이 공유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고정된 장소에서 여러 일을 하지 않고, 여러 장소들(나의 경우에는 국어연구소에서 수업 듣는 학교로, 강의하는 학교에서 논술학원으로)을 넘나들면서 여러 활동들을 한다는 점에 있었다. 슐트는 이 책에서 집에서 학교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영역을 넘나들며 많은 일을 처리하는 경우에는 생산적이라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내가 가졌던 느낌도 이와 유사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틀로서 이 개념이 유용할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브리짓 슐트 저, 안진이 역, 『타임 푸어』, 더 퀘스트, 2015. [2]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에 관한 조사」, 국가인권위원회, 2015. [3] 위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원생들은 공통적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가장 부담스러워 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활동에 많은 시간을 투입하다보니 연구 와 학업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호소를 하고 있다”. [4] 앞서 인용한 연구에 따르면, 연구에 참여한 대학원생 1901명 중 77%가 “학업에는 지장이 없으나 미래(질병, 긴급상황 대비)를 위해 저축할 여력이 없음”에 ‘그렇다’(28.2%)와 ‘매우 그렇다’(48.9%)로 답하였다.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장학금과 조교 노동, 과외, 학원 일들을 이것저것 끌어 모아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다면, 미래를 위한 저축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수 감소, 융합 전공 증가를 생각한다면 대학원생에게 특히 인문계 대학원생에게 ‘미래를 위한 저축’이 불필요할 정도로 탄탄하게 보장된 미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글쓴이 : 임수영

🏡 bit.ly/limsu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