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개월 기간제로 자치구 문화재단에 입사했다. 입사한 재단은 전문적으로 디자인과 홍보, 기획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인력이 필요하면 용역을 쓰거나 사업 기간에만 일하는 기간제 노동자를 뽑았다. 내가 맡은 사업은 그 해부터 시작한 지역 문화 사업이었다. 많은 역경과 타협을 거치며 교부변경 신청을 하는 데 3개월이 걸렸고, 남은 2개월 동안 모든 사업을 진행하고 1개월간 정산을 했다. 사업 진행 기간에는 하루에 2만 보를 걸으며 10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공휴일 오전 6시에 내 개인 연락처를 알고 있는 주민에게 전화를 받고 자주 야근과 주말 출근을 했다. 담당한 사업 외에도 타 사업의 소일거리나 포토샵 작업이 필요한 일을 하며 바쁘게 6개월을 보냈다. 이런저런 일들을 하느라 다음 직장을 위한 이력서를 쓸 체력이 없었고 많은 일을 수습하다 첫 직장생활이 끝났다. 계약 기간이 끝난 한 달은 과로로 아팠고 그 후에 한 달은 지원한 모든 면접에서 떨어져서 일을 구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사업과 관련하여 전화를 계속 받고 (무급) 출근 요구를 받았다. (하지만 출근하지 않았다)

우리는 해마다 우리의 일에 대하여 계획하고 일정을 세운다. 예술계의 안정적인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국가 공공기관이나 부속기관은 3개월, 6개월 단위 혹은 11개월 이하의 기간제 노동자를 고용하여 부족한 인력을 채운다. 문화사업은 기획, 사업보고서 작성 등 사업 기간 이전과 그 후의 노동과 시간이 필요함에도 대부분의 노동자는 사업 운영 기간에만 고용된다. 사업 기간에만 전문인력을 고용하는 일은 여러 문제를 발생시킨다. 내가 맡았던 사업은 전 담당자가 퇴사한 후 아무런 기획과 진행 없이 국가 보조금만 덩그러니 놓여있던 상태였다. 이 보조금을 수습하는 일은 6개월 만에 모든 것을 끝내고 퇴직해야 하는 내 몫이 되었다. 사업을 시작해야 할 시점에서 기획서 초안을 작성했기에 모든 일이 급했다. 많은 우여곡절로 끝낸 프로젝트는 당황스럽게도(?) 호평을 받았고 유의미한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다음 해에 그 성과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부재했다. 무엇보다 퇴사를 깔끔히 마무리할 수 없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퇴사한 후에 성과보고서와 그와 관련된 자료로 계속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계약종료로 일자리를 잃었지만 프로젝트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상사는 본인이 잘 모르는 (혹은 자료가 누락된) 자료들을 정리하느라 고생했다. 기관의 기간제 노동자들은 대부분 지원사업이나 기금으로 급여를 받기에 계약을 연장할 수도 없이 사업이 종료되자마자 일자리를 잃는다. 예술계의 일자리는 되도록 퇴직급여를 주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굴러간다. 나는 문화재단의 기간제 노동자로 일하면서 예술계의 젊은 인력들이 저임금을 받으며 끊임없이 교체되고 자주 일자리를 잃는 일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청년 일자리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정부 예산과 문화체육관광부의 단기성 일자리 정책에 있다고 판단했다.

2020년 문화·체육·관광 예산은 6조 4,803억 원으로 작년 대비 9.4%가 늘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산 중 177억을 2020년 예술인 창·취업 활성화를 통한 예술 일자리 확대 예산으로 책정했다. ①예술 산업 선순환 생태계 조성(25억) ②박물관· 미술관 청년 인재 단기 체험형 일자리 지원(19억) ③전통문화 창업지원 및 융합 활성화(28억) ④이야기 할머니 활동 지원(105억 원)의 사업 지원이 이에 해당한다. 예술 일자리 확대 사업들은 모두 단기적 지원 및 단기적 고용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체험형 일자리는 언뜻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원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기회를 주는 듯하다. 하지만 1년 미만의 단기 근무는 직무를 이해하고 전문 인력으로 성장하는데 터무니없이 짧은 기간이다. 매해 바쁜 일정을 부족한 인력으로 소화해야 하는 기관의 입장에서도 직무 경험이 없는 단기 노동자가 매해 들어오는 일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한 각 기관의 정책상 단기 근로자에게 주요 업무를 맡길 수 없어 제대로 된 행정 운영을 맡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관이 취할 수 있는 입장은 두 가지다. 청년 일자리로 들어온 단기 노동자에게 보조 업무 등의 소일거리를 맡기거나 주요 업무를 맡길 수 있는 경우 문화 사업 운영 경험이 있는 인력을 고용하는 것이다. 두 방향성은 사업 취지에서 벗어나며 후자의 경우 경력직 노동자에게 저임금 노동을 강요한다. 국가의 단기적 고용 정책은 일시적으로 취업률을 올려 주고 많은 일자리를 생산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단기 근로자 고용은 이들이 정규직으로 전환했을 시 퇴직금을 생각하면 몇 억 정도의 예산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 고용이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과 매해 새로운 인력을 전문인력으로 키워야 하는 기관의 입장에서 볼 때 절대 효율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시는 2020년 4월을 기준으로 22개의 자치구 문화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자치구 문화재단은 기관마다 창립 시기가 다르지만, 최근에 출범했을수록 재단 내 전문 인력 수가 부족하다. 내가 일했던 재단은 기관 중에서도 꽤 큰 규모였다. 그런데도 내가 속해 있던 부서는 기간제 직원을 제외하고 문화예술 분야와 전혀 관련 없는 직무를 수행해 온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행정업무에는 능했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진 않았다. 문화예술에 대해 체계적인 전문지식을 갖춘 자들이 안정적인 자리에서 문화사업을 운영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문화재단의 전문성은 그 당연함과 거리가 멀었다. 이 점이 나를 너무 괴롭게 했다. 서울시가 생활예술과 자치구 단위의 문화사업에 힘을 실어주는 시점에서 지역사업이 ‘지원사업 돈 쓰기 챌린지’가 되어 국가보조금이 낭비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또한 사업에 성과가 발생했다면 다음 해에도 꾸준히 이어갈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기존 문화재단 직원의 전문성을 키워야 하고, 또 효율적인 인재 양성 정책으로 재단 내의 운용 인력을 늘려 이들을 위한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문화예술 정규직 일자리에 대한 예산 확보와 그에 따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쓴이 : 후디디

미술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기획한다. [email protected]